세종 25년(1443) 성달생이 咸吉道節制使로 있을 때 道人 海云이 찾아와 이미 간행된 《법화경》은 그 판이 떨어져 나가 인쇄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, 다시 판각할 수 있도록 필사를 부탁하였다. 학계의 조사에 의하면 처음 이 판본이 花巖寺(전라도 高山)에서 처음 간행된 이후로 表訓寺(강원도 금강산)·歸眞寺(황해도 瑞興)·炬峰寺(황해도 平山)·大乘寺(경상도 尙州)·深原寺(강원도 鐵原) 등지에서 약 24차례에 걸쳐 간행된 것으로 보고되었다. 범어사 소장의 이 판본들은 모두 효종 즉위년 6월에 임금과 왕비 그리고 세자의 만수를 축원하고자 경상도 梁山 通度寺에서 개간된 것이다.